‘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 임희정 작가의 글쓰기
[FASTFIVE FOCUS] 패스트파이브가 집중한 인물 #7.『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임희정 작가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
임희정 아나운서가 쓴 글의 제목입니다. 임희정 아나운서의 부모님 이야기가 담긴 이 글은 그녀를 오랫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임희정 아나운서는 이제 임희정 작가가 되어 말이 아닌 글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지난 목요일, 패스트파이브 성수점에서는『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의 저자 임희정 작가의 강연이 열렸습니다. 아나운서로 수없이 많은 말을 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었다는 임희정 작가는 한 편의 글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30년 동안 고민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그녀의 부모님에 관한 글이었는데요. 부모라는 존재 자체가 고통이었다고 말하는 임희정 작가. 그녀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글로 쓰게 되었을까요?
삶이 고통스러워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이유를 묻자, 임희정 작가는 ‘삶이 고통스러워 쓴다’라고 답합니다. 임희정 작가는 매일 행복한 일만 가득했다면 글을 쓸 일도 없었을 거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였습니다. 처음 임희정 작가가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무척 힘겨웠다고 해요.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글을 썼지만, 그 글로 인해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됩니다. 독자로부터 받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또한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죠. 임희정 작가에겐 친구에게도 편히 말할 수 없었던 아픈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소중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를 키운 부모님의 존재가 기적이었다.” –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나는…
임희정 작가의 글쓰기
처음 글을 쓸 때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임희정 작가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독자들에게 ‘나는…’으로 시작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써보라 말합니다.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이를 글로 써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가만히 있어도 남자 친구가 자꾸 떠오른다면 남자 친구에 대한 생각을 써보는 거죠. 직장인 분들이 퇴사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 것처럼요 🙂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정했다면, 사유의 대상이 아닌 사유하는 ‘나’에 대해서도 써봅니다. ‘내 남자 친구는 ~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했다면 ‘나는 남자 친구의 어떤 부분을 사랑하지?’라고 나에 대해 써보는 것이죠. 임희정 작가는 평소 자주 하는 생각을 글로 옮기고, 이후엔 그 물음표를 나에게 돌려 내 생각을 써보는 방법을 권했습니다. 이 과정은 좋은 글감을 찾는 방법이자, 글을 훨씬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해요.
글쓰기 스킬보다 사유의 농도가 더 중요하다.
임희정 작가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글쓰기 스킬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해보는 사유의 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글을 쓰면 모호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그렇게 정리된 생각들은 글을 쓰기 전보다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죠. 짙은 농도의 사유를 하며 글을 쓸 때, 우리는 더욱 선명해진 생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글을 쓰며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요?
“생각은 그냥 생각하는 것이고, 사유는 생각에 생각을 하는 것이다.” – 심보선 시인
임희정 작가의 글쓰기 스킬
좋은 글을 쓸 때 사유도 중요하지만, 글쓰기 스킬 또한 필요합니다. 임희정 작가의 글쓰기 스킬을 몇 가지 전해드릴게요.
1. 일상의 경험은 단문으로, 묘사는 장문으로
글쓰기에 정답은 없지만, 글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형식은 있는 것 같습니다. 임희정 작가는 간결한 표현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간결한 글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인이 경험한 것을 표현할 때는 읽히기 쉽고 간결한 단문 형식으로, 어떤 풍경이나 상황에 대해 묘사를 할 땐 최대한 구체적인 장문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말이죠.
* 단문 글쓰기 (예시)
어젯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출출해져 부엌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 옷을 챙겨 입고 컵라면을 사러 집 앞 편의점에 갔다. → 밤 12시 편의점에 갔다.
* 장문 글쓰기 (예시)
엄마가 마늘 껍질을 벗기고 있다. → 매년 유월이 시작되면 엄마는 햇 마늘을 주문한다. 집에 도착한 ‘산지직송’이라 적힌 상자를 열어보면 빨간 망에 마늘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는 그 망을 꺼내어 베란다 천장에 걸려 있는 빨래건조대를 내려 하나하나 걸었다. (…)
2. 사전 찾기 & 팩트 체크는 필수
임희정 작가는 글을 쓸 때 사전을 자주 찾아본다고 해요. 내가 모르는 단어만 검색하는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단어까지도요. 이는 작가가 된 후 새롭게 생긴 습관이라고 하는데요. 알고 있는 단어라도 사전에 검색해보면 이 단어와 연관된 새로운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운하다’라는 단어의 유의어와 반의어로 여러 가지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요.
“글 한 편이 잘 써지면 마음이 개운하고, 적절한 비유와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머리가 텁텁하다. 다행히도 오늘은 마음에 드는 글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간다. 발걸음이 사뿐하다. ”
3. 글 숙성시키기 (퇴고)
임희정 작가가 전한 또 하나의 글쓰기 스킬은 글 숙성시키기, 즉 ‘퇴고’입니다. 임희정 작가는 쓴 글을 최소 일주일 정도 묵혀 놓는다고 해요. 완성된 글을 수십 번, 수백 전 다시 읽고 조사와 단어들을 바꿔보는 것이죠. 문장의 결도 새롭게 바꿔보고 진부한 표현은 없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는 이 퇴고의 과정은 글을 쓰는 과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두가 궁금해하는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답을 내리며 임희정 작가의 강연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녀는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잘 쓰려 노력하지 말고 잘 써지는 글감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훌륭한 생의 소재들이 많으니까요. 여러분의 삶 역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죠.
여러분은 어떤 생의 소재를 갖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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